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벌지 전투 (문단 편집) ==== 공병 ==== 게다가 연합군의 경우 [[마켓 가든 작전|이미 한 번 당한 경험이 있는 데다가]] 늦어도 2일 이내에 미군의 공병대가 다리 같이 생긴 모든 물체에 폭탄을 설치한 다음,[* 스코르체니 부대원들의 방해 공작으로 몇몇 교량은 폭파되지 않았다. 벌지 전투 당시 어떤 다리에서 독일군의 진입이 임박한 상황에서 폭파시키려 했으나 점화가 되지 않았고 미군은 혼란 상태에 빠졌다가 방치한 채 후퇴했다. 다리엔 어떤 미군 헌병들이 있었는데 한 병사는 그들의 행동에 의심을 품었지만 그냥 후퇴했고, 수개월 후 그는 독일 영내에서 작전 중 독일군 포로들을 만난다. 그중의 한 독일 병사가 영어로 말을 걸었는데, 바로 그때 다리에 있었던 헌병들 중 한 명이었다. 독일군 포로는 "그 헌병들은 모두 위장한 독일군이었고, 당신들은 우리 때문에 다리를 폭파하지 못했다." 라고 말했다. 그리고는 포로 수용소로 이송되었고 미군 병사는 갈 길을 계속 갔다.] 독일 기갑 부대가 접근하면 코앞에서 다리를 폭파하는, 당하는 입장에서는 미치기 직전까지 가는 작전을 구사하였다. 이렇게 번번이 엿을 먹은 [[요아힘 파이퍼]]가 내뱉은 '''"이런 죽일 놈들!"''' 이라는 말은 파이퍼가 미군 공병대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였다. 이미 마켓 가든 작전에서 다리 사수 및 폭파 작업에 노르망디 당시보다도 공병들의 중요도가 무척 올라갈 대로 올라간 시기였고, 결국 벌지 전투에서 미 공병대의 역할은 정말 대단했다. 교량 폭파 및 재설치 같은 교량 작업은 기본 중의 기본이 되어버렸고, 진흙탕 속에 지뢰를 파묻어서 독일군의 진공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으며, 그 외에 최전방에서 방어중인 보병은 물론 기갑부대 같은 다른 병과를 지원해 준 사례가 많다. 특히 땅이 물기를 잔뜩 먹어 땅 자체가 물러버릴 대로 물렀다가 다시 얼기를 반복하며 야전 작업을 어려워하던 보병들이 얼어버린 땅에 [[참호]]를 파는 게 어려울 때 공병의 장비와 폭약으로 참호를 팠으며 많은 전투공병들이 호전적으로 독일군과 교전해 싸웠다. 물론 독일군도 공병이 있고 가교를 설치하는 법은 알았으나 빠른 진격으로 인해 공병대의 교량가설차량이 후방에 있었던지라 독일측에서는 부서진 교량을 봤어도 뭘 어찌 할 수가 없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